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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8편: 공무원이 되는 길(下)

조인 작가 승인 2019.10.12 22:58 의견 0

정권이 바뀌었다. 흔히,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고 한다. 헛소리다. 보수는 꼰대였고, 진보는 무개념이다. 혹은 진보인 척하는 사이비 진보인지도 모른다. 사이비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그리고 사이비만큼 따뜻한 것도 없다. 많은 사람이 사이비 종교의 따뜻한 화톳불 같은 정서에  빠져 가진 재산 탕진하고, 급기야는 부모, 처자식도 버린다. 더 심한 경우에는 천국에 가겠다고 자살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로 천국에 갔는지는 내가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어쨌든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광신도라고 말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 광적으로 뭔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게 축복인지도 모른다.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얻고자 하는 행복. 그러나 누구를 위한 행복인가? 궁극적으로는 다 자아를 위한 행복 아닌가? 보수도 진보도 ‘나’를 위한 정진과 투쟁이지, 세상을 위한 건 아니다. 세상을 위한다는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레이몽 아롱은 마르크스야 말로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마르크스나 종교에 국한한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정화와 자기합리화를 위한 아편을 소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정말 진보로 여겨져야 할 정의당도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는 틈새를 노리는 작은 마피아 집단에 불과하다. 적과 아군도 구분하지 못해서 정당이 해체되기도 했고, 여전히 주체사상을 아편으로 삼아 정신 승리하는 무리가 적지 않다. 그리고 지금 정권이 진짜 진보라면, “안정”과 “공무원” 아편을 맞으려 줄 서는 청년들이 혁혁하게 줄어야 하는 거 아닐까? 진보는 변화와 개혁을 의미하는데 안정과 현상 유지를 도와주는 건 진보가 할 일이 아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에는 진보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함께 일하는 한 여자가 있다. 스물여덟 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다. 잠시나마 이쪽 계통에서 떠났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한다. 키도 작고, 눈도 작고, 얼굴도 작고, 신체 부위 중 두드러지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렇다고 못 생기지도 않았다. 혹, 못생겼으면 그 생김새 때문이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 띌 텐데 그렇지도 않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외모는 두드러지게 못생겼기 때문에, 그리고 정신적 성숙이라는 반전이 있었기에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소설 속에서는 그럭저럭 생긴 여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아무런 특징 없는 사람은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나오는 무색무취한 존재가 돼 버린다.

“뭐 하다가 다시 들어 온거야?”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요!”
“그런데, 왜?”“쉽지 않더라고요.”

분명히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지방 4년제를 나와서 잠시 여행사에서 이런저런 기획서를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처럼, 기약 없이 쓰다가 새롭게 어린 시절처럼 원대한 꿈을 꾸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 타협해서 공무원이라는 원소(遠小)한 꿈이라도 꿔보다가 다시 복직한 것이다. 

언제부터 공무원이 꿈에 포함됐을까? 어렸을 때 난 혁명가가 되고 싶었다. 나폴레옹에 대해 잘 몰랐을 때 난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다. 프랑스 영토를 가장 넓혔던 영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춘기 때까지도 난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군인은 정복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평화유지를 위해 병풍처럼 서 있거나 혹은 상관의 명령에 따라 기계처럼 더 약한 국민이나 시민들을 줘 팼던 깡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나마 군인정권 때 전국 건달들을 군권을 동원해 대충 뿌리 뽑은 건 총잡이들이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정복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할 수 없는 군인은 매력 없었다. 그래서 군인의 길은 포기했다. 그러고 나니, 할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꿈이 사라진 것이다.

군인이 통치했던 시대는 쿠데타라도 통했던 시대다. 시비를 떠나서 한 방에 인생 역전이 가능했다. 물론, 이후 평가는 역전보다는 역적(逆賊)이었지만. 그래도 요즘 청년들한테 역적이 되더라도 대통령 자리를 준다고 하면 하겠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 같다. 이후 고급 관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서 나오는 성(城)같은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공무조직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프리랜서로 살기로 작정했다. 아마 그 후부터 ‘안정’이라는 단어는 열심히 사랑하다가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 뒤돌아보지 않으면서도 가끔 생각나는, 혹은 생각하는 단어로 가끔 떠오를 뿐이다.

“아무튼, 새롭게 시작했으니 포부가 있을거 아냐?”
“전 그냥 성공하고 싶어요!”“성공? 성공이 뭔데?”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싶어요!”

마치 초등학교 6학년 짜리한테 “1+1이 뭐지?”라고 묻는 유치한 질문을 내가 하고 있었다. 요즘 성공의 기준은 다 ‘돈’ 아닌가? 생떽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비판했는데, 요즘은 애들이 더 숫자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한 아이한테 만 원짜리 한 장을 용돈으로 줬더니 “난 할머니가 더 좋은데.”라고 하면서 내 손에서 나뭇잎처럼 흔들거리는 세종대왕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물론, 아이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더 좋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른 입장에서는 10,000과 50,000의 차이로 느껴지니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넌 어떤 돈이 제일 좋아?”
“전 500원 짜리요!” 
“왜?” “뽑기에 필요하니까요!” 

아이는 때로 어른의 생각을 초월하고 숭고미를 느끼게 만든다. 마치 나야가라 폭포를 보면 느낄 수 있는 경외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저 마음이 얼마나 유지될까?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싶어요!” 이게 청년의 꿈이다. 9급 공무원 시험도 힘들어서 포기한 청년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차라리 별을 따라간다고 하면, “미쳤다.”라는 소리는 들을망정 그 꿈을 존중해 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공무원 시험을 포기한 청년의 ‘돈 많이 벌어서’라는 소리를 하면 그 꿈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 돈 많이 벌어서 잘살아 보자고!”

나이 더 먹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조건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파이팅!”뿐이었다. ‘나’를 버리고 ‘조직’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조직 속 부속품으로 존재하면서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나를 포기해도 좋다.”라고 마음을 가진 청년들의 바람과 꿈을, 나는 꿈이라고 받아 들이기가 힘들다. 그러나 꿈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이 꾸고 있는 꿈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불현듯 책갈피에 꽂아 놓은 만원이 생각났다. 저 많은 책 중 어디엔가 있는 만원을 위해서 난 최소한 한 시간은 만원을 위해 살아야 할 것 같다. 공무원이 꿈이 돼버린 세상에서, 그리고 그 세상에서 만원에 집착하는 나를 보면서 혁명과 혁신이야말로 꿈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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