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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7편: 공무원이 되는 길(中)

조인 작가 승인 2019.10.06 13:42 | 최종 수정 2019.10.12 22:58 의견 0

뉴스를 보니, 공무원 600명 충원에 수만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당연히 9급이다. 한 번 정도는 도전할만하니까 흔히 말해서 들이대는 것이다. 그래서 뽑히면, 159만2400원(2018년 기준)이 첫 월급을 찍힌다. 31호봉이 317만1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첫 월급을 받으면 예전처럼 부모님 내복도 사기 힘들다. 괜찮은 내복을 사려면 봉급의 10분의 1은 족히 넘게 들어 갈 테니 말이다. 특히나 요즘은 취업하자마자, 개인 품위를 위한 여러 품목 등을 구매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매하거나 그동안 길러 주셨던 은혜는 감사하나, 독립을 선언하고 월세를 구한다. 그러니 내복은 살 생각도 안 할 것이다. 취업만으로도 부모님의 짐을 덜고 기쁨을 드린 것이니 내복 따위는 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은 평생직장이니 한 가족의 한순간 행복감을 맛보게 해줄지도 모른다.

이런 공무원을, 문재인 대통령은 2억 원 넘는 연봉을 받으면서 17만 명 이상을 뽑겠다고 공약했다.

곱하기 4를 하면, 약 70만 명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 물론, 그 기쁨은 무지개처럼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어쨌든 그런 행복이라도 맛보기 위해서 많은 공시생이 신림동과 노량진 일대에 다시 집결하면서 그 지역 일대의 생기가 돌았다고 하니, 새로운 대통령의 공약은 더 많은 국민에게 혜택을 준 셈이다.

물론, 임기 내 17만 명이니 5로 나누면 3만 명 대를 매년 뽑겠다는 것이고 경쟁률을 고려하면 매년 수십만 명의 낙심에 역시 곱하기 4를 더하면 최소 백만 명이 넘는 가족들의 한숨과 함께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합격자 발표날에 대한민국 하늘을 덮을 것이다.

하기야, 세상 이치가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수의 희생이 있어야만 한다. 현재 정권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그동안 누렸던 권력을 내놓아야만 가능하다.

나 같은 국민이야 권력과 상관없지만, 어쨌든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 그 제도를 통해서 혜택을 받는 계층이 존재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걸 정치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가진 자이기에 아무리 서민을 위한다라고 해봤자, 책상물림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니, 대학진학률도 70% 이하로 떨어졌다는 기사를 봤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대학교 졸업한 후 공무원 시험을 보느니,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 보는 게 유리하다는 걸 요즘 학생들이 알기 때문이란다.

수천만 원씩 대학교에 가져다줄 바에야 그 기간에 공무원이 돼 돈을 벌겠다는 심산이다. 똑똑한 건지, 아니면 꿈이 없는 건지 알 길은 없으나 대학 이외의 길을 찾는다라는 측면에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 보도 자료를 보니, 미래 선망 직장 1위가 교사, 그리고 5위 권 안에 공무원과 같은 철밥통 직장이 네 군데나 있었다. ‘철밥통’이 대세인 셈이다. 그것도 10년 넘게 말이다. 나 어릴 때 선생님 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선생님 하겠다는 애들이 가장 많다는 소리다.

내가 어릴 때 교사라는 직업은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공부 꽤나 한다는 녀석들은 정치인, 기업가 대표 등을 구상했고, 그 생각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군대를 다녀오고 첫 동정을 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정반대로 공부 못하는 녀석들은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도 안 했던 이유가 매일 같이 본인의 몸에 흠집을 내는 선생님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상위권 학생들이 교사를 지망했던 것이다. 

◇ ‘안정이 뭘까?’

작년에 신용대출을 하려고 금융권에 전화했는데, 대뜸 묻는 말이 “4대 보험 가입돼 있으시죠?”였다. 프리랜서가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아니요. 프리랜서여서 그렇지 못합니다.”

이어서 상냥한 목소리로 “그러면, 월 급여는 얼마 정도 되시나요? 통장으로 입금되는 내역을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역시 “네. 프리랜서여서 매달 다릅니다. 그리고 통장으로 받지 않을 때도 있고요.”

이 정도면 대출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계속 나긋나긋하게 진행해 준다. “네. 필요하신 금액은 얼마나 되시죠?” “한 5백만 원 정도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능한가요?” “아, 여기는 접수 부서라서요 상담부서에서 연락 갈 거예요.”

한 10분 정도 통화해서 접수해 준 거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상담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간략하게 확인한 후 접수해 준다고 했다. 그나마 2금융권 이하에서는 대출이 진행되기라도 한다. 하지만, 카드사는 어림도 없다.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카드 발급이 어렵다. 연체금액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류현진이가 미국에 가기 전에 한 금융사에서 카드를 발급받으려고 했는데, 실직자여서 발급되지 않았다고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현재는 다른 금융사에서 카드를 발급받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안전제일”을 넘어서 “안정제일”이 된 것이다. 
 

박봉이지만, 정년이 보장되고 실적이 많지 않아도 되고, 승진은 내 앞 사람이 막고 있으면 쉽게 올라가지 못하는 현실이지만, 어쨌든 봉급은 늘고 연금도 어느 정도 보장된다. 모험, 도전, 실패, 응전, 실험 등 사회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언어는 모두 뭉개져서 믹서기에 들어가서 섞여 나왔는데, 그 말이 “안정”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장미 선거로 당선된 정권은 잘 알았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81만 개의 일자리 공약, 이미 공약(空約)이 돼버린 약속을 했고, 공무원은 마음대로 늘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17만 명을 충원하겠다고 했다. 전자정부와 전자민주주의 등을 비롯한 기술 도입으로 부서를 통합하고 인력을 줄여야 하는 판국에 오히려 더 늘리겠다는 시대착오적인 공약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에 혈안 돼 있는 실직자들에게는 얼마나 단비 같은 소식이었을까? 

전 대통력은 비선실세 딸을 조카처럼 생각했었다. 그래서 귀여웠을까? 아니면, 자식이 없는 걸 자랑처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허전했던 것일까? 무려 삼성 대표를 데려다 놓고 말 사주라고 째려봤으니 말이다. 그 눈빛이 재벌 3세가 보기에는 레이저처럼 느껴졌다고 하니, 삼성의 미래도 쉽지 않을 거 같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권은 일자리를 늘린다고 했으니, 확 비교되지 않았을까?

갑자기 마르크스와 베버가 떠오른다. 정말 제대로 읽기도 힘들고 읽었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둘 다 독일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뭐가 닮았을까? ‘아. 하나 있다. 바로 둘 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저술했다는 점이구나!’

실제로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책들을 저술하지 못했을 것이고, 베버 역시 유복한 가정이 아니었다면, 마르크스를 견제할만한 글들을 세상에 내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안정”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들의 글은 일반인들이 자주 접하기도 힘들고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이런 샌님들을 벗어나서 체 게바라, 마오쩌둥과 같은 혁명가들을 생각하면 국가 전복까지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인데, 그 전까지의 삶은 그야말로 광야였다. 특히 체 게바라는 이유야 어쨌든 간에 볼리비아까지 가서 총 맞고 죽지 않았는가? 마르크스와 베버의 업적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들의 사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불안정한 인물들이 없었다면, 한낱 도서관의 고서로 남거나 그 전에 인멸됐을 것이다.

몇 년 전에 교수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간사로 일했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교수직에 있는 분들이었는데, 개인적인 능력도 좋았지만 모두 집안이 좋았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사람들 아래서 식당 예약하고, 회의록 정리하는 걸 영광으로 여기고 오랫동안 섬겨야 했을까?

그러나 난 그렇지 못했다. 비전 없는 모임에 정착하기에는 난 너무 어렸다. 나에게 꿈은 무엇이었나? 변화였다. 혁신이었다. 아니면 혁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혁명은 혈흔(血痕)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실제로 생명을 잃지 않는다하더라도 정치적 생명을 잃거나, 경제적 생명을 잃거나, 문화적 생명을 잃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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