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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잔(21)] 헤르만 헤세(Hermann Karl Hesse) 『유리알 유희』

- 정치적 유희는 그만!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3.08.29 13:03 | 최종 수정 2023.09.13 20:12 의견 0

한 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 1위가 헤르만 헤세라고 한다. 굉장히 의아하지만 『데미안』이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돼 어린 시절부터 만나게 되는 작가이다 보니, 성인이 돼서도 꽤나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헤세의 작품은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기도 하고, 주제도 철학적이어서 나이와 상관없이 가볍게 독서하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매력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헤세의 작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습한 감수성에 흠뻑 취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성급하게 집어들고서 집으로 가져오고 말 것이다. 나도 헤세의 작품을 처음 읽고 난 후 그의 작품을 열심히도 읽었다.

처음 헤세를 만난 작품은 『싯다르타』인데, 볼륨이 크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신중하게 곱씹으면서 읽어야만 했다. 헤세의 성장배경이 된 집안 분위기는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학자와 성직자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부모님은 헤세가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태생적으로 타고난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에게, 꽉 막힌 벽 속에 갇힌 모양의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악몽일 뿐이었다.

결국, 그는 성직의 길을 포기하고 정규과정 교육도 온전히 받지 못한다. 엘리트 집안의 이단아가 된 헤세는 다양한 직업을 거쳐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고뇌에 찬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쓰게 된다. 대부분 작품에 우수에 찬 감성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있는데, 헤세의 순탄치 못했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헤세를 열심히 읽어 본 독자라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유리알 유희』는 1943년에 출간돼 작가에게 1946년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헤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볼륨도 있고, 그 내용도 쉽지 않아서 독자들이 굉장히 까다로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헤세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본 작품은 꼭 읽어야만 하는 결정판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헤세 작품의 특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작가 작품의 결정판이라 생각해도 지나침이 없다.

요세프 크네히트는 우수한 학생으로 특히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는 스승들의 총애를 받았고, 특히 ‘유리알 유희’ 명인의 눈에 띄어 특별한 관심대상이 됐다. 그의 학업 수준과 성품 등을 고려할 때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 미래 수도원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크네히트는 그렇게 본인이 몸담고 있는 수도원의 규율을 잘 지키고 교육도 잘 받아 ‘유리알 유희’의 명인이 되었고, 그의 성품과 열심, 그리고 교류의 능력은 다른 수도원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이끌고, 수도원의 위상을 올리는 데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평생 수도원에 갇혀 살던 크네히트에게 데시뇨리라는 친구의 이탈과 그 후 그와의 교류는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수도원밖에 모르고 살던 그에게 세상은 또 다른 단계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성장의 단계로 여기는 데, 첫 단계가 유리알 유희 명인을 만나 좋은 교육자로 성장한 것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 그는 수도원에 더 이상 머무르기를 포기하고 세상으로 나가기로 선언한다. 고립된 수도원의 현상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데시뇨리의 아들 티토를 가르치기로 하고, 준비된 거처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이른 아침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유리알 유희’가 뭘까?

책을 읽는 동안 제목 ‘유리알 유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이해되지도 않고, 공식적인 학문은 아니나, 또 모든 것에서 시작할 수 있는 무한한 것. 어쩌면 유리알 유희라는 제목은 폐쇄적인 영역의 수도원과 대립적인 요소일 수도 있다.

음악, 수학, 과학 등 어떤 영역에서든 시작해서 그 영역 확장이 다른 분야에 이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유리알 유희라고 한다. 학문으로 따지면 통섭 이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확장의 유희가 세상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 모순을 작가는 서술한다. 독자적인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수도원은 그들의 능력을 세상으로 전파하기를 꺼려한다. 구별된 자로 살아가는 엘리트들의 폐쇄성을 헤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크네히트가 수도원에서 나오기 전에 전달한 문장은 고립된 수도원의 현상을 비판한다. 1943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대다. 헤세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장한 사람으로 전쟁을 반대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지성은 자의든 타의든 나치에 동조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승승장구하는 국가의 승전보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나치의 지향점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광복이 오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동조한 친일 지식인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헤세는 동조하지 않고, 나치에 저항한다. 그 대가는 헤세 작품의 출판 금지였다. ‘유희(遊戱)’는 쉽게 번역하면 놀이이다. 영어로도 ‘Game’정도로 번역된다. 작품 속 유리알 유희는 처음이자 끝이 될 수 있는 과정이다. 명인이 별도로 있을 정도로 수도원에서 정규과정은 아닐지라도 애써 가르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유희’는 그저 놀이일 뿐이다. 엘리트들의 지적 탐구와 연구를 통한 결과가 단순히 그들만의 지적 성장을 위한 놀이로 멈춰진다면, 세상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지적한 제목이 ‘유리알 유희’ 아닐까?


◆정치 유희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는 과거로부터 쭉 있어왔던 일이다. 가깝게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훌륭한 유학자들이 고관대직을 차지하고 일했던 게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즉, 훌륭한 학자가 좋은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역이 다양화 됐을 뿐 많은 전문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몇 십 년 째 글빨과 말빨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진중권과 유시민을 들 수 있다. 둘 다 과거에는 진보적 패널로 인식됐으나(필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에 전자는 스스로 중간자로 자처하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적 소리를 내고 있고, 후자는 지지하는 채널이 분명하고, 현재 상황이 좋지 않으니 애써 큰 목소리를 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지 과거와 비교하면 분명 대중 앞에 등장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비판자를 자처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혹, 모두 다 찬성할 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진지하기 보다는 유희로 들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거나 지금이나 정치에 잘못 발을 들여놓으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 과거에는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기도 했고, 요즘에도 가산을 탕진하는 일이 허다하다. 알게 모르게 사용되는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준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도 각오도 없이 정치에 참여하는 게 과연 옳을까?’라고 질문해보면, 답은 ‘이정도 각오는 해야 한다!’로 나올 것이다. 정치는 나만을 위한 게 아니다. 국민을 생각하고, 시민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정치적 우군이나 공동체는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목에 핏대를 세워 날선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유희를 즐기는 자는 그런 목에 선 핏대를 보고 좋은 소리는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어쭙잖은 공식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스스로 옳은 듯이 이쪽저쪽 편하게 돌려 깔 수 있는 허세가 생긴다.

◆승부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해방 후 정치사 속 승부사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정치인들을 생각해 보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승부사였다. 독재를 위해 정적(김구 등)을 제거했고, 국민(재선 당시)을 이용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가? 그도 승부사다였다.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일으켰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신 헌법을 만들었다.

이후 민주화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며, 3당 합당에 찬성했다. 대통령을 하기 위한 승부처였다고 생각한다. 다음 대통령, 김대중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치 은퇴를 번복했다. 그리고 김영삼과 똑같이 김종필과 연합했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후 승부사 기질을 보여줬던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대통령은 죽기 싫어서 출마하여 얼떨결에 대통령이 됐는데, 죽음을 각오한 게 아니라 죽기 싫어서 출마한 것이어서 기존 승부사와는 결이 다르다. 야당 대표도 죽기 싫어서 버티는 모습이니 승부사는 아닌 듯하다. 아쉬운 부분이다. 정치적 승부사가 사라지고, 유희자들만 즐비한 형태이니 앞으로도 정치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최근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기념 현수막 문구 속에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문구를 본적이 있다. 역사는 반드시 진보하는 게 아니다. 언제라도 후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진보라는 도그마에 빠져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치인이 맹랑하게 발언하는 ‘역사의 판단’은 항상 옳기만 했던 게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유리알 유희’가 지적으로 가장 높은 단계의 유희였던 만큼이나 세상과의 담도 높았던 것을 생각해 보자. 현재 우리의 정치 유희가 그들만의 흥미진진한 토론을 이끌 수 있는 명분은 될지언정 세상에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차가운 물에 서서히 심장이 멈춰가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죽음에 대항했던 요제프 크네히트의 승부사 기질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는 이미 자신을 따라와 덤벼들고 있는 죽음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심장이 뛰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죽음과 맞싸웠다.”(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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