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이 남긴 것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1970년대까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학생운동 역시 자유주의적이고 온건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광주는 이 인식의 틀을 바꿔놓았다.

광주 이후 운동권은 단순히 독재 정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외세와의 관계, 경제 체제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는 '변혁적 사회운동'의 복원으로 이어졌다.

❚변혁적 사회과학의 유입

1980년대 초반, 대학가에는 새로운 이론적 흐름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 종속이론, 레닌주의 등 1970년대까지 금기시되었던 변혁적 사회과학 이론들이 지하 경로를 통해 수입되고 학습되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블라디미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체 게바라의 『게릴라전』, 마오쩌둥의 저작들이 금서임에도 불구하고 은밀히 복사되어 유통되었다. 『자본론』은 불법 복제본이나 일본어 중역본으로 학습되었다. 김수행 교수의 정식 완역본은 1989년 비봉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이론 학습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본질을 파악하고 변화시킬 혁명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실천적 과제였다. 학생들은 "한국 사회는 무엇인가", "주요 모순은 무엇인가", "누가 혁명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토론했다.

❚대학가 지하 서클의 형성

이 학습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전두환 군부 정권의 탄압이 극심했고, 마르크스주의 관련 서적은 모두 금서였다. 학습은 비합법 지하 서클 형태로 진행되었다.

서클은 극도로 폐쇄적이고 비밀스럽게 운영되었다. 합법적인 학회나 동아리를 위장막으로 삼거나, 지하에서만 활동하는 조직도 있었다. 서클의 학습 방식은 '강독회'라고 불렸다. 소규모 그룹이 모여 금서를 함께 읽고 분석하며,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토론했다.

책은 복사기를 이용해 제작되어 '돌려 읽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한 권의 책이 여러 서클을 거쳐 다니며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읽혔다.

이 시기는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의 '준비기'였다. 이론적 역량을 축적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1985년, 이 모든 준비가 공개적인 논쟁으로 폭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