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성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현채와 이대근의 논쟁은 추상적 이념 대립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설명하려 한 것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급속한 변화였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 한국 경제는 연평균 8.7~9.3%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1980년대에는 더욱 가속화되어 연평균 9.5~9.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1986~1988년의 '3저 호황'(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시기에는 연 12%를 상회하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포항제철, 현대조선, 울산석유화학단지가 건설되었다. 재벌은 국가의 전폭적 지원(저리 융자, 세제 혜택, 수출 지원) 아래 급속히 성장했다. 동시에 수백만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여 공장 노동자로 전환되었다. 1차 산업 비중은 1970년 27.1%에서 1990년 8.5%로 급락했다. 이것은 농민이 급속도로 해체되어 도시 임금노동자로 편입되는 과정, 즉 프롤레타리아화를 보여준다.

이 '압축 성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현채와 이대근은 같은 현실을 놓고 완전히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박현채의 해석은 이랬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미국 자본과 기술에 종속된 결과다. 한국 재벌은 독자적 기술력 없이 미국과 일본의 하청 생산을 담당할 뿐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은 외국 자본과 매판 자본(재벌)에게 돌아가고, 노동자와 농민은 착취당한다. 이것은 '종속적 발전'이며, 진정한 의미의 독자적 발전이 아니다. 따라서 외세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진정한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없다.

이대근의 해석은 달랐다. 외국 자본의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재벌은 이미 독자적인 자본 축적 능력을 갖췄다. 국가 권력과 결합한 독점 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며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가 확립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 즉 '국가독점자본주의'다. 외세 종속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핵심은 자본주의 내부의 계급 모순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잘 작동하여 노동자 계급을 양산하고 있다.

같은 현실을 놓고,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석의 차이는 곧 투쟁의 방향을 결정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vs 국가독점자본주의

박현채와 이대근의 사회 성격 규정은 용어상 비슷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회 인식을 담고 있었다.

박현채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핵심은 '신식민지'였다. 박현채는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 제국주의에 예속되어 있으며, 한국의 독점 자본(재벌)은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매판 자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국은 실질적으로 주권을 잃은, 식민지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이었다. 박현채에게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신식민지 상태에서 나타나는 종속적 형태였다.

이대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는 '신식민지'라는 표현이 빠졌다. 이대근은 한국 자본주의의 내재적 발전에 주목했다. 비록 외세의 영향이 있지만, 한국의 독점 자본은 국가 권력과 결합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따라서 한국은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이며,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모순이 사회의 근본 모순이라는 것이었다. 이대근에게 국가독점자본주의는 한국 자본주의가 독자적으로 도달한 발전 단계였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이해하자면 이렇다. 박현채는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으므로, 미국을 몰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는 것이고, 이대근은 "한국은 이미 독자적인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재벌과 국가의 착취를 멈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는 것이다.

❚민족 모순 vs 계급 모순

사회 성격 규정의 차이는 '주요 모순'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이어졌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주요 모순'은 그 사회의 다른 모든 모순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뜻한다.

박현채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았다. 즉, '미국 제국주의와 그에 예속된 한국 지배 세력' 대 '한국 민중(민족)' 간의 모순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박현채의 논리에서, 외세의 지배가 계급 모순을 포함한 모든 모순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므로, 외세 축출이 최우선 과제였다. 재벌도 문제지만, 재벌이 착취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비호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대근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계급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았다. 즉, '국가독점자본가 계급' 대 '노동자·농민 등 민중' 간의 모순이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이대근의 논리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고도로 발전했으므로, 자본주의적 착취가 가장 중요한 모순이며, 민족 문제는 계급 모순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형태에 불과했다. 미국이 물러간다 해도 재벌의 착취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이론적 논쟁이 아니었다. 주요 모순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투쟁의 방향, 동맹의 대상, 혁명의 주체가 모두 달라졌다. 민족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면 '반미 투쟁'이 핵심이 되고, 계급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보면 '노동 해방 투쟁'이 핵심이 된다.

❚이론가들의 입장 정리와 전개

1985년 논쟁 이후, 학자들의 입장은 점차 명확해졌고, 이것이 운동권의 노선 분화로 이어졌다.

▶박현채 계보 (민족 모순 우선론)
→ 박현채: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시, 민족 모순 강조
→ 한완상: 박현채의 틀을 민중신학과 결합, 민족 해방과 민중 신학 연결
→ 이들의 이론은 후에 NL(민족 해방) 노선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이대근·김수행 계보 (계급 모순 우선론)
→ 이대근: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독점 자본과 노동자의 계급 모순 강조
→ 김수행: 『자본론』 번역 및 해설,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 분석
→ 이들의 이론은 후에 PD(민중 민주) 노선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1985년 당시, 이 논쟁은 아직 학술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박현채와 이대근은 모두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로 보았고, 변혁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그러나 '무엇이 주요 모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달랐고, 이 차이가 1980년대 후반 운동권의 격렬한 노선 대립으로 발전하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