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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의 무비파크] 너는 여기에 없었다. (2017)

다큐PD 김재훈 승인 2020.01.26 09:10 의견 0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확 높아진 경우 였습니다.

어떤 영화이길래 버닝을 앞선 것인지. 원래 대단한 연기자인데 칸에서 남우주연상이라니, 얼마나 더 대단한 연기를 한 것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천의 얼굴 "호아킨 피닉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영화의 완성도는 보장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언제 개봉할지 기다려 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각도에 따라서 이해나 해석의 정도가 무척이나 다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무거울 수도, 불편할 수도,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 그런 영화라는 말입니다.

생각해볼수록 현실 속의 모습들... 우린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스틸컷

◇너는 여기에 없었다. 네가 곧 나이므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킬러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습니다.

주인공 역시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 그리고 군대에서의 기억. 하지만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기억의 단편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인공 "조"에게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자살을 연습하지만, 절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잔인하게 죽여야만 합니다.

자신이 학대받았던 방법으로 누군가를 해치는 조의 모습,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수많은 일들이 존재하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동반되는 죄책감들에 대해 당신은 비난할 자격이 있냐고 영화는 물어옵니다.

수많은 해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과 오버랩이 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현실과 똑같고, 단지 영화적인 표현상 폭력이라는 요소를 더해서 이야기할 뿐이라고....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스틸컷

◇우리는 서로가 무언가의 도구일 뿐인 것을 안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해쳐야만 하는 것도 안다.

우리는 이미 어떤 무언가의 도구입니다. 회사의 도구, 누군가의 조수, 어떤 기관의... 등등 서로 등을 돌리면 이겨야만 하고, 철저하게 밟아버리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방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닌 그저 도구로서의 역할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폭력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 같지만, 영화 속에서 조라는 인물은 킬러로서의 강력함이나 활약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는 미미하고, 오히려 피폐한 내면을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현란한 조명이나 파격적인 액션, 화려한 색감의 등장도 빼버리고 오로지 호아킨 피닉스의 눈빛에 의지해서 풀어나갑니다. 단편적 기억의 영상 교차와 몽환적 음악은 무게감 있는 전개에 맞춰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극단적인 우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근본 없는 무지막지한 한 편의 시를 읊조리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라디오 헤드의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우울한 음악의 느낌을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바로 그들 중의 하나가 음악을 만들었으니까요. 죽어가는 암살자에게 조는 진통제를 먹이고, 그 마지막 순간에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고 조의 손을 꼭 잡아주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암살자는 마지막 순간에 길을 잃었습니다. 서로가 잘못된 위치에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자들이 느끼는 교감 같은 것이겠죠.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 스틸컷

◇길을 잃었다.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무언가를 위해서

주인공 조는 자신의 나약함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조 역시도 갈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자신이 투영된 것과 같은 니나에게 묻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어?"
"몰라요."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절망스러운 말이 세상 어떤 말보다도 절망스러운 법입니다.
니나에게서 조는 자신의 본모습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절망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좋아요, 우리 나가요"

니나의 한마디는 조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진 말과 같습니다.
니나는 곧 조 자신이기도 하며, 다시 태어나 지켜야 할 것을 찾은 것은 아닐까요.

시종일관 주인공을 따라가는 영화지만, 주인공의 대사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사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호아킨 피닉스의 표정과 눈빛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체중을 불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근육마저 만들어 주인공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을 보면 왜 천의 얼굴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는지 이해가 갑니다.

여하튼 제 리뷰가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제 해석이 틀릴 수도 있고요.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지만 하나만은 분명한 영화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최고입니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You were never really here, 2017)
감독 : 린 램지
출연 : 호아킨 피닉스, 예카테리나 삼소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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