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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시대] 크리에이티브함으로 도시재생에 기여하는 로컬크리에이터

(기고) 비로컬 김혁주 대표 "크리에이티브 팩터의 발현을 통해 재생의 구심점이 된다"

비로컬 김혁주 대표 승인 2020.03.12 12:28 | 최종 수정 2020.05.21 20:55 의견 0

‘로컬’의 중요성이 높아진 이유 중 하나는 새롭게 창조된 ‘로컬’과 ‘로컬’ 생태계를 주도하는 ‘로컬크리에이터’가 도시재생의 새로운 동력으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이란 쇠퇴한 도시를 부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도시가 발전을 거듭하다보면 수평적으로 확장되기 마련인데, 이로 인해 나타나는 도심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시도된 도시재생은 도로나 공원 등 도시기반 시설 정비, 도시 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복합용도 건물의 건축, 양질의 주택과 업무시설을 제공하기 위한 리모델링을 통해 원도심을 재건하고자 재개발, 재건축에 초점을 맞추며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건물과 주택의 가격과 임대료를 급등시키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해 원래 살고 있던 지역 주민을 타 지역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페캄 도서관 (사진출처: 페캄도서관)

◇선진국 사례에서 배운다

이에 도시재생의 방향성과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역주민의 공동체성을 지키고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이 도시재생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선진국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영국의 페캄도서관의 경우, 도서관이라는 작은 문화시설을 통해 도시의 기능을 회복하고 활성화시켰다. 또 영국의 게이츠헤드는 문화예술 작품을 통해 도시의 회복을 도모했다. 미국의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는 쓸모가 없어진 철로를 철거하지 않고 시민공원으로 꾸며 주민편익과 역사적 장소성을 제공했다.

선진국이 도시재생의 수단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건 1985년부터 시작한 ‘유럽문화수도’ 사업의 경험 덕분이다.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 간의 상호이해를 목적으로 매년 회원국 도시 하나를 선정해 1년간 집중적인 문화행사를 펼치는 사업으로, 이 사업을 통해 문화공유가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로 나타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2002년 유네스코가 추진한 ‘창조도시 네트워크’ 사업으로 이어지면서 문화와 예술이 도시발전 전략의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화와 예술이 재생의 실마리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부터 ‘문화도시사업’을 시도하며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도시·지역재생사업을 도입했다. 이후 2012년부터는 정부가 ‘문화융성’, ‘창조경제시대’를 표방함에 따라 문화콘텐츠가 도시경제와 도시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문화거점을 만드는 방법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나타났다. 문화거점 전략은 쇠퇴한 지역의 폐광이나 폐공장, 창고 등을 개조해 지역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또 공공이 이용가능한 장소가 문화공간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문화예술 인프라를 조성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하더라도,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예술의 주체가 되어 나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문화예술 건축물을 만들거나 리모델링하는 형태의 무늬만 다른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될 뿐이다.

 부산 영도구 깡깡이 예술마을 (사진출처 : 부산 영도구청)

◇시설물 투자가 우선되는 현실

실제로 정부 지자체가 추진하는 재생사업 예산의 대부분이 아직도 시설물에 투자되고 있다. 균형발전을 위해 예산은 배당되고 그러다보니 공연없는 공연장, 문화없는 문화시설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문화주체로서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주체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 필요한 건 맞지만, 대규모 문화시설물을 만든다고 해서 문화주체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주민들이 문화주체로 나서게 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더 두드러진다. 원도심 공동화가 이루어지는 곳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가 인구의 노령화 현상이다. 자녀가 생기며 주거의 확장이나 교육의 편의성을 원하는 젊은 세대가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인구가 줄어들며 공동화가 발생했는데, 청년 인구 유입을 위해 복합문화시설을 짓는 식으로 대안을 찾는다는 식이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복합문화시설 조성이 성공하더라도 유동인구만 늘릴 뿐, 원도심의 공동화는 막을 수 없다. 거꾸로 청년인구가 원도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해답일 수 있다. 청년층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거비용의 문제이고, 그 다음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아닐까? 이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로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랜드마크 조형물로는 '로컬'을 형성하지 못한다

‘로컬’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조형물이나 시설을 만드는 데 골몰하게 된다. 이 방식은 굉장히 큰 리스크를 안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놨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빗발치거나 운영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포항시 ‘은빛풍어’, 세종시 ‘흥겨운 우리가락’, 신안군 ‘황금바둑판’, 소래포구 ‘새우타워’, 무주군 ‘태권브이’, 함양군 ‘변강쇠와 옹녀 테마공원’, 마산 ‘로봇랜드’, 이밖에도 이미 많은 실패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과 딜레마 속에서 ‘로컬크리에이터’가 도시재생의 새로운 대안으로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역주민이 문화주체에서 도시재생의 주체가 되기까지는 도시재생 거버넌스 구성을 비롯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게 현실이고, 시설물 조성과 운영을 위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 볼 때 ‘로컬크리에이터’는 혁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이 투영된 ‘로컬’ 생태계를 자발적으로 창조해 나간다. 때로는 소셜미션을 가진 활동가로, 때로는 작은 상점이나 공방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얼굴로 나타난다.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사업 포스터 (출처 : 창조경제혁신센터)

◇로컬크리에이터가 재생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과정에서 ‘로컬크리에이터’가 운영하는 점포가 ‘앵커스토어’의 기능을 수행하며 재생을 필요로 하는 소외된 지역으로 유동인구를 유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점포 공간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고 싶은 이들의 ‘로컬’로 인식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이들의 활동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활동, 스스로 존재하고 싶은 ‘로컬크리에이터’의 생활방식이자 생존방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에는 거버넌스 구축에 필요한 시간단축이 일어나고, 시설물과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예산이 대폭 절감된다. 도시재생의 일대혁신이 ‘로컬크리에이터’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과로 말미암아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로컬 문화와 가치를 창조하는 ‘로컬크리에이터’를 독립적 산업의 하나로 보고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처음 시행되는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사업이다. ‘로컬크리에이터’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로컬크리에이터가 만능은 아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중소벤처기업부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로컬크리에이터’의 개념을 모호하게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을 기반으로 디자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소셜벤처, 문화기획 등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을 ‘로컬크리에이터’로 간주하고 있어서다.

이는 ‘로컬크리에이터’를 업종으로 구분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지금의 ‘로컬’이 다양한 의미가 복합된 복층 레이어 구조로 나타나고 있고, 이를 무대로 활동하는 ‘로컬크리에이터’는 업종의 형태로 식별하는게 불가능해서다. 그러나 ‘로컬크리에이터’의 발굴과 육성을 위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의욕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조심해야 할 것은 ‘로컬크리에이터’를 도시재생의 만능 해결사, 맨손의 마법사로 보는 시각일 것이다. ‘로컬크리에이터’가 뜨는 골목을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고 하지만, 뜨는 골목이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는다. 전국적으로 ‘~리단길’ 열풍을 일으킨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 반면교사가 되어준다.

◇골목길 열풍의 명암

원래 경리단길은 이태원과 남산 사이에 육군중앙경리단(지금의 국군재정관리단)이 있는 곳이라는 데서 이름이 만들어졌다. 넓은 도로 주변으로 상가가 발달한 이태원길과는 달리 후미진 곳이었으며, 왕복 2차선 도로의 좁은 거리에 피지대사관, 필리핀대사관, 길 끝의 하얏트호텔 외에는 특별한 건물이나 시설도 없던 주거지역일 뿐이었다. 그러나 인근의 용산 미군부대와 이태원이라는 지역적 특징이 외국인들의 주거단지를 형성하게 했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식당과 술집이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의 ‘경리단길’로 뜨기 시작한 건 2010년 들어서부터다. 상권이 형성되기엔 입지가 상당히 좋지않아 소외된 지역이었다. 언덕빼기에 있는데다 지하철역도 멀고, 도로도 좁아 유동인구를 끌고들어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태원 중심상권의 임대료가 높아지자 중심가에 있던 점포들이 경리단길로 옮겨오기 시작했고, 각각의 점포가 가진 콘텐츠와 제시하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에 끌린 고객들이 하나둘씩 경리단길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성공하기 시작한 경리단길은 2010년대 중반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빠른 속도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이곳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 뜨는 가게들이 하나씩 문을 닫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 홍석천도 경리단길에 개성있는 음식점들을 운영하며 경리단길 부흥에 일조한 인물이지만, 임대료를 감당못하고 폐업을 선언했다.

경리단길 (출처: 용산구청)

◇골목길도 라이프 사이클이 있다

경리단길의 성공은 지금의 ‘로컬크리에이터’ 논의보다 앞선 ‘로컬크리에이터’의 존재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주가 많은 ‘로컬크리에이터’라 하더라도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할 방도는 많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절대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상품이나 비즈니스의 라이프 사이클인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와 비슷한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관광지의 경우 이보다 조금 더 복잡한 6단계의 라이프 사이클 ‘탐색-참여-개발-강화-정체-쇠퇴 및 재생’을 갖고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뜨는 골목도 언젠가 반드시 지기 마련이다. 경리단길이 뜨고 지는데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이런 라이프 사이클에 대입해 보면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로컬크리에이터’는 탐색-참여-개발이라는 초기 과정에서 자기만의 ‘로컬’ 생태계를 구축하는 개척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들의 ‘기업가 정신’이 도시재생의 원동력이 되는 한편,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되면 기존의 ‘로컬크리에이터’나 새로운 ‘로컬크리에이터’가 노마드로 변신해 탐색-참여-개발의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 낙관할 수 있다.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로컬’은 기존에 우리가 이해하던 ‘지역’, ‘지방’과는 다른 ‘라이프스타일’ 생태계라는 점이다. ‘로컬크리에이터’는 골목을 ‘힙’하게 부흥시키는 비결도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데서 시작했다는 점도 명심해 두자. (계속)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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