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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을가다] 마을공동체와 1인가구에겐 공유공간이 필요하다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7) 서울 용산구 후암동 <도시공감협동조합> 이준형 실장

이연지 기자 승인 2020.05.21 01:50 | 최종 수정 2020.05.21 19:19 의견 0

서울역과 남산 사이 서울 용산구 후암동은 조선 말 고종 때인 1882년 임오군란으로 청나라 군사가 주둔했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에는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해방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미군부대가 오랫동안 주둔했다. 이렇게 후암동 마을의 역사는 적어도 13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에는 가수 박희선에 의해 <후암동 비탈길>이라는 노래도 나온다. 남산에서 맺었던 사랑의 맹세가 깨지고 차가운 비를 맞으며 외로이 울며 후암동 비탈길을 걸어간다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1975년에는 전파송신탑 건설을 겸해 237미터 높이의 광관전망대인 <남산서울타워>가 건설되는데, 이는 후암동만이 아닌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남산 비탈길에 형성된 마을의 골목길은 들쭉날쭉 오묘하다.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남산과 <남산서울타워>는 후암동에서만 볼수 있는 독특한 골목 풍경을 연출한다. 이런 후암동에 힙한 골목이 형성되고 있다. 숙대입구역 2번출구에서부터 후암시장까지 연결되는 골목길과 남산자락 곳곳에 숨겨진 독특한 가게들이 도보여행으로 후암동을 찾아오게 만들고 있다.

이런 후암동이 활성화되는 한켠에는 마을공동체와 1인가구를 위한 공유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도시공감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이준형 실장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지금과 같은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이준형 실장: 건축학과를 졸업하던 당시에는 커다란 건축물을 설계하는 스타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동경하는 건축가들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 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고급 건축물을 짓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되고 싶은 건축가는 어떤 사람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집,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관심이 생겼다. 상류층을 위해 화려한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건축을 하고, 마을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를 고민하다보니 지금의 사업으로 연결되었다.

▶후암동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는지?

☞이준형 실장: 서울이 고향이 아닌 것도 있었고, 스스로 마을 건축가로 활동하기 위해 다양한 공간을 알아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선시대의 중심가를 이뤘던 한양 도성이 있는 구도심에 터전을 만들고 싶었다. 성북, 종로 등 많은 곳을 돌아보던 중 지인이 SNS에 올려준 사진 한 장이 눈을 사로잡았다. 후암동은 동네에 오래된 주택부터 최근에 생긴 건물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어우러져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분위기에 매료되어 후암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멤버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일반 회사가 아닌 협동조합형태를 띄게 된 이유가 있는지? 또 <도시공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에 담긴 사연이 있다면?

☞이준형 실장: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는 것과 동시에 마음 맞는 선후배들과 건축사무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형태로 설립하게 되었다. 그냥 회사이름이 <도시공감협동조합>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도시공감협동조합>의 이름 속에서 ‘도시’는 마을보다는 더 거창한 개념이면서, 로컬, 마을과 함께하는 사업체라는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명시했다. ‘공감’은 로컬이 지닌 다양한 사회적, 환경적 요인의 절충안을 찾아 로컬에 맞는 공간을 만들어내며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넣었다.

▶도시공감협동조합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이준형 실장: 크게는 ‘도시전문가로서 마을이나 지역을 관리하는 일’과 ‘공유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일’ 두 가지다.

도시전문가로서 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마을 아카이빙 사업인 <후암가록>이다. 말 그대로 “후암의 집을 기록한다”는 의미다. 앞서 말했듯, 후암동에는 목조주택을 비롯해 오래된 주택이 골목마다 남아있다. 90년대 이후 지어진 집들은 가옥의 도면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되어 있고, 이는 구청에서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인 60~70년대에 지어진 가옥은 도면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문화재도 아니다보니 시에서도 보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을에 남겨진 집들을 우리가 기록하면 재미있는 생활기록 유산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

문밖에서 본 <후암가록>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후암가록>으로 기록하는 가옥은 어떻게 선정하는가?

☞이준형 실장: 우선 <도시공감협동조합>이 전단지나 포스터를 통해 알리고, 후암동 주민분들이 전화로 신청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건축전문가들인 <도시공감협동조합>에서 그 집을 실측해 도면을 그린다. 이 도면을 디지털화해서 우리 쪽 자료 보관소에 아카이빙한 다음, 신청하신 분들에게 액자나 명패로 제작해 채색한 출력물을 선물로 드린다.

그렇게 3년 동안 18개 가옥의 도면을 제작했다. 이렇게 제작한 도면을 모아 전시도 진행하고 있는데, 프로젝트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소소한 전시 공간 <후암가록>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후암가록>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의미가 있다면?

☞이준형 실장: 처음엔 마을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동한 건축가로서 호기심으로 시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 속에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집, 이웃집의 이야기를 알아가게 되며 함께 살고 있는 마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현상들을 발견했다. “아, 이 집은 이렇게 생겼구나”하며 골목을 지날 때마다 이웃의 집들이 눈에 더욱 자연스럽게 띄게 된다. 이런 과정이 새삼 동네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후암가록>은 3평짜리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120년에 걸쳐 형성된 후암동을 가옥구조의 기록을 담아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공유공간들을 하나씩 만들게 된 계기는?

☞이준형 실장: 처음부터 공유공간 사업추진을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하고 있던 2008년, ‘1인가구와 주거공간의 변화’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2008년을 기점으로 4인가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1인가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4인 가족이 더 이상 한국을 대표하는 가정의 형태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주거의 형태 역시 고시원, 원룸, 쉐어하우스 등이 발전했다. 특히 사회적 주택, 쉐어하우스의 등장은 서울에서 주거공간을 지니기 힘든 청년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 형태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그런데 원룸이나 고시원의 경우 주거공간의 구분이 없다. 방 하나에서 모든 생활공간이 이뤄진다. 이불을 펴면 침실, 밥을 해먹으면 주방, 책상을 펴면 서재로 변신하는 셈이다.

전통적인 집에 있어야 할 공간을 집에서 누릴 수 없으니, 이런 공간을 밖에서 누릴 수 있도록 주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주자는 취지에서 만든 첫 번째 공간이 <후암주방>이다. 주방 기능을 공유공간으로 빼내어 밥 한 끼를 같이 해먹고 싶은 사람들끼리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017년 3월에 문을 열었는데, 3~4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예약을 통해 자연스런 이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인가구에게 공유주방은 밥 한 끼를 같이 해먹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만의 공간과 시간을 꾸밀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문화와 파티문화를 대변해준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이준형 실장: <후암주방>을 통해 사람들이 공유공간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다음 공간을 고민해 2017년 12월 <후암서재>를 조성했다. 다른 사람들과 코워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후암서재>는 좀더 아늑하게 나만의 서재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었다. 일반적인 코워킹 스페이스와 달리 공간을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루 동안 나 혼자 이용하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특별함을 제공한다.

또한 <후암서재>는 예약을 통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보니 오전에 입실한 이용자가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가곤 한다. 하루의 일과가 모두 후암동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이는 이용자가 후암동 골목을 더욱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하루 동안 자기만의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아지트 같다는 평도 많다.

최근에는 <후암거실>도 만들었다. 밖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기 보다는 넷플릭스나 왓챠 등 콘텐츠 스트리밍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트리밍 콘텐츠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모여서 쇼파에 앉아 티비를 함께 보며 맥주도 한 잔하고,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거실’이다. 그래서 공유거실을 만들게 되었다.

<후암서재>는 북캉스, 집중 업무공간, 소규모 강좌를 개최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합한 공간으로 조성했다. 원룸이나 고시원과 같은 주거환경 속에 처한 1인가구에게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공유공간들이 로컬을 활성화 하는데 도움이 될까?

☞이준형 실장: <도시공감협동조합>이 조성한 공유공간들을 살펴보면, 세 평, 다섯 평 등 독립적인 점포를 꾸려나가기엔 매우 협소한 공간이다. 이런 애매한 공간의 장점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술 더 떠서 동네를 재개발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새롭고 재미있는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동네에 이런 공간들이 생기면 허름한 주택가가 아기자기하고 개성 넘치는 거리로 변화한다. 공간을 꾸미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런 공용공간은 동네 주민 외에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로컬이 활성화 된다.

안타깝게도 관에서 주도하는 사업들은 도시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마을 사람들이 거래하는 형태를 창조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마을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후암거실>은 쇼파에 기대거나 누워 넷플릭스나 왓챠를 즐기며 여럿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1인가구들이 "따로 또 같이" 가족처럼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여가활용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이준형 실장이 생각하는 로컬크리에이터는 어떤 모습인가?

☞이준형 실장: 나는 처음에 마을건축가, 지역건축가를 꿈꿔왔다. ‘지역’이란 말이 영어로 로컬(local)이고 건축가는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크게 보면 오래 전부터 ‘로컬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고민해왔다고 할 수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는 로컬을 대하고, 로컬과 맺으려는 관계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대뜸 들어와 새로운 가게를 만들고, 특이한 공간을 창출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 교류하며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주도적으로 마을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공유하며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간다. 이런 움직임이 로컬 공간을 주도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61CIWCO3oI

 

최근 <도시공감협동조합>은 5번째 공유공간 <후암별채>를 오픈했다. <후암별채>는 차를 끌고 교외로 가지 않아도 굳이 뒤척이며 불편한 잠자리에 들지 않아도 하루 종일 나만의 공간에서 반신욕과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하루 단 한 명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도시공감협동조합 제공)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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