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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11편: 조국 VS 조국

조인 작가 승인 2019.12.07 13:10 의견 0

신기하게도 세상에는 조국이 존재한다. 그 사람은 양주 조씨인데, 나라 조(趙)를 쓴다. 국(國) 역시 국가를 상징하는 이름 자체가 조국이다. 내가 아는 양주 조씨는 『토지』에 등장하는 나쁜 놈 양주 조가이다. 하는 짓이 조국 팔아먹는 수준이다. 그에게 조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본인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사실, 조국도 마찬가지다. 조국이 잘 되는 길은 국민 모두가 잘 되는 게 아니다. 그저 조국의 위상을 널리 드높여 줄 엘리트만 있으면 된다. 파레토 법칙을 넘어서서 99.9% 법칙이 등장했다. 실제로 0.1%를 위한 99.9%이다. 조국은 엘리트였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얼굴도 미남이어서 인기도 많았다. 남녀가 유별한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예쁜 여학생과 잘생긴 남학생은 시대를 초월해서 관심받기 마련이다. 더욱이 공부도 잘하고 체격도 좋은 편이었으니, 한국판 알렉산더라고 해야 할까? 

조국은 알렉산더와 비교했을 때 같으면서도 참 달랐다. 같은 점은 똑똑하고, 잘 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알렉산더는 태생 자체가 모험을 즐겨야 했던 전쟁의 사나이였다면, 조국은 샌님같이 안정적인 걸 추구했다는 점이다. 물론, 조국도 한때는 모험을 즐겼다. 모두 데모를 할 때 그도 데모에 앞장섰고, 당연히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수재였으니 당연히 사법고시도 응시했다.

그런데, 그는 용모만큼 머리는 수려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끈기가 부족한 것이었을까? 그는 한 번 떨어지고 나서 꽤 좌절했다. ‘왜 내가 떨어졌지?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원래 평생 실패 없이 자란 사람은 첫 실패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사법 고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아니던가? 당연히 한 번은 떨어질 수 있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뭔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채점자의 의도와 그가 생각한 논리가 안 맞았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두 번째 떨어졌을 때는 더 큰 좌절감에 휩싸였다. 주변에서도 “처음은 그럴 수도 있어. 다음에는 꼭 붙은 거니 걱정하지마!”라고 하면서 위로했지만, 두 번째 낙방했을 때는 위로도 없었다. 집에서도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재정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조국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동기들도 척척 붙는 사법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지니 부모님들의 자존심도 조국만큼이나 처참 했던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고 이제 판검사 할 거니, 나한테 잘 보여야 해!”라고 설레발 치고 다닌 어머니는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난 아들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는 세 번째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후회 없이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머리도 밀고, 만나던 여자도 정리했다. 시험을 못 보는데 머리카락과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그러나 뭐라도 희생양으로 삼아야 했기에 조국은 그동안 본인에게 헌신했던 여자를 아무런 자책 없이 버린다. ‘어차피 사법시험에 붙으면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어.’ ‘사’자 돌림 직업을 갖게 되면, 수준에 맞는 여자를 찾아서 결혼할 생각이었던 거였다. 그의 학창 시절 데모나 학생 운동도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처절한 절치부심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권력층이 태생하면 한자리 차지할 명분이자 작업이었기에 조국은 기존 정권 타도를 그렇게 크게 용맹 과감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헌법개정을 통해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됐다. 그러나 조국이 바라는 세상이 오기까지는 아직 멀었고, 그때가 올지 안 올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었기에 조국은 사법시험이라는 현재 권력의 보증수표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조국은 늘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살아날 수 있다. 독립을 위해서는 독립운동가들이 필요했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역시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이 있었기에 조국이 숨을 붙일 수 있었다. 조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에는 그를 수재로 만들어 줄 열등생들이 있었기에 엘리트 대우를 받으면서 자랄 수 있었고, 대학에서는 잘 난 외모와 좋은 학벌로 많은 학생을 위에서 쳐다보면서 좋은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조국은 집안도 제법 살았기 때문에 거친 일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흔한 과외 아르바이트조차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법대에 다니는 동기 중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라도 있으면, “뭐 그런 거 해서 얼마나 번 다고?”라고 하면서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서 사법시험에나 붙어!”라고 비웃었다. 그런데, 현재는 그들이 사법시험에 붙어서 곧 판검사를 대기하고 있고 본인은 두 번이나 낙방해서 세 번째 우울한 시절을 보내는 상황인 것이다. ‘다, 진해 때문이야!’ 조국은 자신을 2년이나 지켜준 여자를 희생양 삼아 지금의 좌절감을 애써 떨쳐 낸다. 

진해 역시 모자란 집안의 학생은 아니었다. 이화여대를 좋은 성적으로 들어갔고, 전공도 영문학과로 여자로 치면 모자랄 거 없는 학생이었다. 조국을 만나게 된 건 미팅으로 만나게 됐고, 한 미모 덕분에 조국의 관심을 받아 사귄 것이다. 원래 서울에서 잘 사는 집 딸이었기 때문에 조국이 시험에 낙방해도 별로 문제 될 게 없었다. ‘그깟 사법시험 합격해서 뭐 한담.’ 시험공부로 인해서 본인을 만나주지 않는 조국을 진해는 2년 동안 원망해왔다.

하지만, 이별 통지를 받게 되니, 그녀 역시 좌절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믿었던 조국이 자신을 버린 것이다. 그렇게 희생했는데, 그녀에게 남은 건 “그만 만나자!”라는 두 마디였다. 그리고 조국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등을 돌리고 사라졌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워낙 짧은 시간이었기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조국에게 버림받는 국민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과거 조선 시대 선조는 자신의 보위를 위해서 백성을 버리고 압록강 변을 서성였다. 일본군이 더 올라왔다면, 강을 건넜을 것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자 국보로 추앙했던 이승만 대통령도 한강철교를 끊어 버리지 않았던가? 우리 조국은 항상 국민에게 한마디 말없이 떠나기를 일삼았다. 

조국은 핑계 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조국은 진해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다른 조국은 국가 재건을 이유로 삼았다. 선조는 그가 잡히면 조선이 끝난다고 생각했고 이승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곧 조국이라고 스스로 믿었기에 당연히 압록강을 건너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강 다리를 폭파해야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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