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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독일통일(66)] 사실상 2개 국가지만 특수한 국내관계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8.30 11:00 의견 0

기본조약은 내용적으로도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조약은 성질상 국제법적 조약이며, 그 특수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에는 무엇보다 내부관계를 규율하는 조약이다. 국제법적 조약 속에서 내부관계를 규율하는 것은 무엇보다 여기서처럼 전체 국가의 조직붕괴로 국법적 질서가 결여된 경우에 필요하게 된다.

연방국가의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연방헌법상의 규율이 결여된 경우에 지분국가들 사이의 관계는 국제법의 규율에 따르게 된다. 따라서 ‘두 개의 국가 모델’이 기본법 질서와 양립될 수 없다는 견해는 옳지 않다고 하여 내용적으로도 두 개 국가의 조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애매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서독의 여러 주장의 요약인 연방의회에서 정부여당인 사민당-자민당과 야당인 기민련/기사연의 주장에 대한 정치적으로 타협적인 결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결정은 통일 시까지의 동서독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즉,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의 관계는 국제법적으로는 주권국가의 관계지만 국내법적으로는 국내 관계인 소위 ‘특수한 관계’로 표현되는 ‘사실상(de Facto)’ 2개의 국가 관계다. 이 점은 오데르-나이쎄 동부의 국경에 관한 결정도 마찬가지다. 즉, 헌법재판소는 1945년 8월 2일자 ‘베를린에서의 3강국 회담 보고서(포츠담 합의서)’ VI장과 IX장에 따라 독일 동부 지역은 ‘영토 관련 문제는 평화협정 체결 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유보 하에’ 일부는 소비에트 연합의, 다른 일부는 폴란드의 행정 하에 놓이게 되었다.

3강국은 “독일 동부 지역을 소비에트 연합과 폴란드에 최종적으로 넘기는데 동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소련과 폴란드는 전쟁 직후에 오데르-나이쎄 동부 지역의 완전한 합병조치를 취하게 되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서독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특수관계에 관해서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않았던 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1992년 남북한 기본합의서 상의 특수관계에 관하여 대내적으로 1민족 2체제 2 정부로, 대내적으로는 남북한은 1국가로, 남한의 입장에서는 법률상 중앙정부로 구성되는 대한민국과 지방적 사실상 정부로 구성되는 정치 실체인 북한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브란트 총리는 1969년 총리 취임사에서 동독과의 관계를 특수한 관계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모스크바 조약이나 바르샤바 조약에서 서독은 이 조약이 잠정적인 것으로 서독의 통일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서신을 첨부하였고, 연방의회도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 조약 비준동의 시 이런 취지의 원내 정당의 공동선언을 발표하여 동독의 국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는 대연립 정부의 외무장관 시에 소련이 주창해온 주권국가 독일민주공화국 참가를 전제로 한 유럽안보협력기구 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표현을 하였고, 기본조약 협상 시기 소련의 오레안다에서 브레즈네프와 비밀회담 시에도 유럽안보협력회의 참여를 약속하였다.

야당의 비판처럼 동독과의 기본조약 협상대표인 브란트 총리의 참모 에곤 바르는 동독과 국가 간의 협상 태도를 유지하였다. 기본조약은 서명 당사자 호칭, 주권 존중 등 서독과 동독을 서로 국가를 전제로 한 명백한 국가 간 조약의 형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국가간 조약이다. 그리고 연방의회에서 야당의 대표인 전총리 키징거 의원이 현상에 대한 최종적인 봉인이라고 비판하였듯이 브란트 정부의 신동방정책의 기본전제는 현상의 인정이다. 이에는 동독의 국가성 인정이 포함된다.

이런 여러 사정에서 결국 동서독 관계는 ‘사실상’ 2개 국가의 관계로 1990년 동독의 국가 소멸 시까지 이런 관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런 애매한 관계에서 기본조약에 따라 양국이 상주대표부를 설치하는데 서독은 국내 행정을 관할하는 내무부 관장 하에 동베를린에 대표부를 두었고, 동독은 외무부가 관장하는 대표부를 서독의 본에 두어 운영하였다. 그리고 동독은 여기서 더 나가서 2민족 2국가론에 근거하여 서독에 국가승인을 요구하였다. 물론 서독은 기본조약 체결에도 불구하고 1민족 1국가 2 정부론을 유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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